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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산맥의 대성산 북쪽 산기슭에도 또 하나 민통선 마을이 숨겨져 있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근남면 마현1리는 마을 뒤로 광주산맥의 주능선이 흘러가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동쪽 말고개에서 갈라진 또 다른 능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며 이 마을을 계곡 속으로 가둬놓고 있다. 단 한군데 서쪽으로만 휑하게 트여 멀리 김화 벌판과 철원평야로 흘러가는 남대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서쪽벌판에서는 늘 북서풍이 불어왔다. 바람은 말고개에 막혀 계곡 속을 오랫동안 휘감다가 스스로 잦아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현상을 '바람돌이'라고 불렀다. 북서풍이 부는 겨울은 바람돌이가 더 심했다.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될 칼바람이 두 번, 세 번씩 지붕 위를 스쳐 가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북향이면서도 눈이 빨리 녹는 이유는 녹는것이 아니라 바람이 날려 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처음 남쪽에서 와서 우리가 얼마나 추웠겠어요?"
1990년 2월 그 마을을 찾아갔을때, 그 '바람돌이' 얘기를 해주던 도옥이(都玉珥)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그 마을에 살지 않았다. 민통선 1세대들은 이제 86세의 최고령 장내경 할아버지와 할머니 7분이 생존해 있었다. 그때 133세대 391명이던 마을 인구는 119세대 406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처가가 있는 마을로 이사 온 집, 마현리에서 굶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살러 온 두 할머니, 하사관으로 전역한 전직 군인 등이 새 얼굴이었다. 1990년 2월 현재 137명의 어린이가 다니던 마현초등학교는 47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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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란 말은 그 마을을 개척한 민통선 1세대들이 붙인 지명이다. 바람돌이 밖에서는 그 마을을 '울진촌'이라고 불렀다. 경상북도 울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1959년 9월 17일 추석날이다. 이미 제주도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태풍 사라호가 이날 아침 남해안에 상륙했다. 중심기압 965mmb, 중심 풍속 초속 46.9m의 강력한 태풍은 남한 전지역에 골고루 267.5mm의 비를 쏟아놓고 경북 울진 지방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갔다. 이재민 25만 5천명, 사망 750명, 부상 2,200명, 건물파괴 12만 1천동, 선박피해 6,600척의 피해규모는 아직도 사상최고 기록이다. 울진은 그 해 가을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수확을 포기한 채 맞는 그 해 겨울도 모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겨울 뒤에 맞는 봄을 더 두려워했다. 울진군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됐다. 따라서 당시 울진군의 이재민 긴급구호 대책은 강원도지사가 세우고 있었다. 겨우내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마현1리 민통선 북방지역의 정책이주 계획이 수립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66세대 200명(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의 민통선 개척단이 구성됐다. 모두 울진읍 내 이재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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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4일.
아침 일찍 울진초등학교에서 울진군민 환송식이 있었다. 다시 못 볼지 모른다며 일가친척들이 모두 나와 배웅했다. 25대의 군용트럭에 나눠 탔다. 빈 몸으로 가도 된다는 말만 듣고 모두 가재도구는 없었다. 한 집에 보따리 한 개씩이었다. 맨 앞에서 헌병 지프가 호송하고 맨 뒤에는 앰뷸런스가 뒤따르는 긴 행렬이었다. 삼척에 도착했을 때 점심이 트럭 위로 올라왔다. 더운물에 분유를 진하게 탄 우유물이었다. 남자들과 아이들은 후룩 들여 마셨지만, 여인들은 비린내가 난다며 마시지 않았다. 여인들은 그때 대부분 분유물을 처음 먹어봤다. 벌써부터 우는 여인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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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7일.
말고개(馬峴)를 넘었다. 누군가 "저기다"하고 소리 쳤을 때,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대부분 말이 없었다. 논과 밭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아카시아나무 숲 건너편에 군용천막이 줄을 맞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군인들이 저런데서 사는가 보다."라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트럭은 그 천막촌을 향해 가고 있었다. 66채의 천막이 이마를 맞대고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세대주의 이름을 부르면 "넷"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한 집씩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천막 속 땅바닥은 질척하게 물이 고여 있었다. 군인들이 마른 풀 한 아름과 가마니 두 장씩을 천막 안으로 넣어주었다. 이어 행동지침이 시달됐다. 장교는 가장들을 일렬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국을 밟으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천막촌을 중심으로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동그라미 밖은 지뢰밭입니다. 지뢰는 아이도, 할아버지도 몰라봅니다. 아셨습니까?"
장교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었다.
"전방에 무엇이 보입니까?"
장교가 가리키는 쪽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산 뒤로 검은 산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교는 그 검은 산은 북한 땅이며 지금 북한군이 우리를 째려보고 있을 것이라고 또 겁을 주었다.
"그러니까 밤에 불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장교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됩니다."
그렇게 답변해야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들 정말 겁을 먹고 있었다. 식량이 배급됐다. 천막마다 청보리쌀이 1가마씩 놓였다. 울진에서는 그 청보리쌀을 논갈이가 시작될 때나 송아지를 낳았을 때 어미 소에게 삶아주던 사료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들 떠나버렸다. 울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최전선의 지뢰밭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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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촌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전 '3.15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 그들도 김화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 이승만 대통령에게 몰표를 보내는데 한 사람도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로 4.19학생의거가 일어나고,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식량과 농기구를 보내 주겠다던 도지사는 깜깜무소식이었다. 군수도 오지 않았다. 면서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새 정부는 그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행정의 사각지대에 내던져진 난민 신세가 돼버렸다. 이번에도 50연대장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부대 지휘권 지역에 내팽개쳐진 난민들을 구제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천막촌에 쌀을 나눠주며 "술을 담궈 보라."고 묘한 암시를 했다. 연대장은 슬기로운 사람이었다. 천막촌에 술이 익자 군인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술값을 지불했다. 눈치 빠른 몇 사람이 그 돈으로 화천 사방거리에서 쌀을 사와 또 술을 담궜다.
"군인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간 뒤엔 군부대에서 '빳다' 맞는 소리가 철썩철썩 들려요. 그래도 이튿날 밤엔 또 찾아와 술을 팔아 줬지."
"그땐 군인들도 잘 못 먹을 때야. 그 쌀을 빼앗아다가 술을 담궈 먹이고 매를 맞히니 군인들이 기합 받는 밤엔 천막촌도 숨을 죽이고 같이 맘을 아파했지요."
"그때 군인들이 없었다면 우린 다 굶어 죽었을 거야."
도씨 할머니와 노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그 연대장을 '대령'으로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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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물에 덤벙 담갔다 꺼내 항아리 속에서 익히는 '덤벙 김치'는 울진 사람들도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민통선 속에 고립돼 반세기 가까이 바깥세상의 때가 안 탄 울진촌에는 그 김치가 전수되고 있었다. 울진촌의 반찬은 산나물 무침은 말할 것 없고, 국도, 찌개도 유난히 짜고 맵다. 1989년 고향 울진의 일가친척들이 버스를 대절해 울진촌을 찾아온 일이 있다.
"그래 이 맛이야. 이게 옛 우리 울진 맛이야."
울진촌 주부들은 그때 고향 사람들이 여기 맛이 더 울진 맛이라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마현초등학교 허남황 교무주임은 2001년 3월 이 학교에 부임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말 속에 짙게 묻어 있는 경상도 억양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투를 아버지가 따라 배우고, 아버지의 말투를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랜 고립이 '울진촌의 울진 말'을 보존한 것이다. 김종호 이장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이 마을에 남겨 놓은 것이 또 있어요, 울진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도전과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 놓은 개척정신이지요. IMF때 대도시 실업자들이 좀 많이 귀향을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 마을엔 단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버지, 할아버지들 한테서 배운 것이지요."
Posted by 함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