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분지가 운석분지로 세상에 태어난 그 해 역시 세상에 태어난 유수진씨에게 내가 DMZ 일대를 여행하면서 가장 감동적으로 보았던 얘기를 해줬다. '흥부새', 그 얘기는 '사람은 누구나 그 곳에 살 자유가 있으며 누가 멋진 역사를 쓰느냐는 것도 자유'라는 사실을 내게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쇳소리를 내며 날아오른다는 새벽 새 떼를 보러갔다.
지뢰밭 한가운데 들어앉아 있는 철원 양지리의 토교저수지의 새벽 새떼를 보기 위해 늦은 오후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갔다.
지뢰 덕분에 온전히 늙어갈 수 있는 버드나무들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는 숲 띠가 한탄강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강을 건너 숲을 지나면 들판이다. 동쪽, 서쪽 어느 쪽으로도 누이 모자라게 아득히 철원 뜰이 펼쳐졌다. 낮은 산 양지 쪽으로 양지리(陽地里)가 앉아 있었다. 언덕 위의 작은 교회 하얀 종탑은 그때 저녁 해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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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밖에서 "철새가 찾아오는 양지쪽 맑은 물로 농사를 짓는 양지리 쌀이 으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양지리 오대쌀 인기가 올라갔다. 누군가 논에 청둥오리를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해충 잡아먹고, 논 김매고, 도랑치고, 가재잡고...."기분 좋은 농사였다. 이번엔 쌀값이 올라갔다. DMZ고엽제 파동으로 철원쌀 인기가 말이 아닌데도 정작 양지리 DMZ쌀은 앉은 자리에서, 그것도 몇 만원씩 값을 더 받고 팔아버렸다.
철원평야 한 쪽 끝에서 시샘이 일어났다. "새가 돈을 몰고 왔대. 양지리만 흥부가 사나? 우리도 새 밥을 줍시다." 이웃 연천 사람들마저 "한 발짝만 더, 한 발짝만 더 서쪽으로..." 하며 철원 새가 연천에도 와 살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새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새벽 새가 비상하는 것도 볼거리고 새터 싸움도 볼거리라며 새 관광을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백씨는 떠밀리듯 민박을 열었다. 그리고 새구경하는 집이면 창문이 커야 한다며 한 쪽 벽을 헐었다는 것이다.
백씨의 얘기가 잠시 숨을 고를 때마다 호수가 울었다. 호수 가득 내려앉아 있을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둑을 넘어와 유리창을 흔들고 있었다. 백씨는 "저 호수는 겨울 밤 내내 개구리 울음 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나는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이 그대로 들어와 앉은 거다란 창문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꿈을 꿀 수 있다면 나는 서로 새를 사랑하겠다고 전쟁을 하는 이상한 나라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오전 7시 어두운 호수는 분주했다. 두꺼운 검은 띠가 호수를 가로질러 있었다. 7시 5분, 검은 띠 한 쪽 끝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 큰 호수를 들어올릴 것 같은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다. 뒤따라 폭풍우 소리가 일어났다. 아니 비행기가 뜰 때 같은 폭음이 일어났다. 쇠기러기는 쇳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천, 수만 장의 손수건이 날아올랐다. 손수건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높이 날아 올랐다. 그리고 서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7시 20분 검은 띠 한 쪽에서 또 한 차례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여명이 트는 동쪽으로 날아갔다. 7시35분, 또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다. 그들은 남쪽으로 날아갔다. 관제탑에서는 정확하게 15분 간격의 이륙을 지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드시 전 편대의 역방향 비행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동산 쪽일 것이다. 동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막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비상이 시작됐다. 검은 천 조각들이 푸르르 피어 올랐다. 그것들은 다시 어마어마하게 큰 흰 포장이 되어 동산을 뒤덮어버렸다. 뒤따라 세상의 뾰족한 소리를 다 모아 온 것 같은 소리가 쫓아와 우박처럼 쏟아졌다. 나는 그때 비행기의 뱇처럼 엄청 크고 미끈한 기러기들의 하얀 배를 쳐다보았다. 빈 하늘에서 나풀나풀 깃털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안아보면 한 아름이나 될 만한 몸통 밑에 하얀 솜털로 감싸인 멋진 배에서 깃털 하나가 떨어져 들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 흥부새. 마음 착한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줘 부자를 만들어 준 흥부전의 그 새.
Posted by 함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