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민통선 속에 방치된 황무지가 개척되기 시작했다. 지뢰에 민간인이 희생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개척민과 지뢰의 전쟁이 시작됐다. 아마 그 전쟁은 지구가 머지않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게 될 '인간과 지뢰의 전쟁'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민통선 개척민들은 지뢰밭이라면 어디든 농지로 바꿔 놓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독충들도 그대로 당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억세고 현명한 민통선 개척민들조차 자신들 앞에 손을 들게 만들었다. 민통선 지역은 40여 년만에 거의 다 농지로 개간됐다. 지뢰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완승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뢰는 결코 인간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아직도 수많은 '민들레 벌판'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지뢰밭은 백두대간,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서해 외딴섬까지 진출하며 옛날보다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뢰는 최초 전쟁에서 기막히게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자신들이 어수룩해 보이게 하는 기만전술을 쓴 셈이다. 바로 지뢰는 머리를 밟고있는 동안은 절대로 터지지 않고, 발을 떼는 순간 터진다는 그 엉터리 정보가 그것이다. 그 무렵 나온 전쟁영화들까지도 그 엉터리 정보에 현혹돼 어처구니 없는 지뢰 상식을 퍼뜨렸다. 예를 들면 지뢰밭에서 꽃 피운 전우애를 그리면서 지뢰는 발로 머리를 밟고 있는 동안 절대 터지지 않는 멍청한 무기로 묘사하는 것 따위다.

수색조의 꼴통인 일등병은 이번 작전에서도 말썽을 부렸다. 수풀을 헤치고 가던 그이 몸이 갑자기 말뚝처럽 굳어 버렸다. 분대장을 행해 고개를 돌린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솟고 있었다. 분대장은 직감적으로 그가 지뢰를 밟고 있다고 알아차렸다.
"움직이지 마라!"
대검을 빼어 든 분대장은 어느 새 일등병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등병의 워커 밑에 깔린 대인지뢰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누르고 대검으로 지뢰를 캐내 능숙한 솜씨로 뇌관을 분리해 버린다.

민통선 개척민도 지뢰는 발을 뗄 때 터지는 굼뜬 무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뢰를 밟으면 영화속의 용감한 분대장과 같은 군인이 달려 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서 있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퍼트리기도 했다. 땅 속에서는 쇠붙이가 빨리 녹슬기 때문에 전쟁 때 묻은 지뢰들은 삭아 없어졌거나 터질 힘도 없다는 무식한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지뢰에 대해 떠돌고 있는 정보는 모두 엉터리였다. 많은 개척민들이 자신이 지뢰를 밟았을 때 였는지, 발을 떼었을 때였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무참히 당하고 또 당했다. 지뢰에 녹이 슬었는지, 아닌지 분간할 새도 없었다. 지뢰는 항상 숨죽이고 숨어 있었으며 심지어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살아남아 개척민이 걸어오길 기다렸다.

"지뢰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체중이 실리는 순간 터져 버리는 대단히 재빠른 무기인데도 누가 무엇 때문에 발을 뗄 때 터지는 굼뜬 무기라는 소문을 냈을까. 누가 무엇 때문에 세월이 가면 지뢰도 작은 쇠붙이에 불과하다는 소문을 냈을까."

개척민들이 그런 후회를 하고 있을 때는 이미 민통선에서 벌어진 인간과 지뢰와의 첫 싸움에서 인간의 참패가 결정됐을 때다.
그러나 인간과 지뢰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민통선 마을에 '지뢰잡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대개 왕년에 지뢰를 매설해 보기도 하고, 제거해 보기도 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스스로 지뢰에 관한 한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지뢰들을 찾아냈다. 그들이 한 바퀴 돌아 나온 숲에서는 지뢰사고가 나지 않았다. 개척민들은 그들을 고용했다. 어느 마을에 기막힌 솜씨를 가진 '지뢰잡이'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를 초빙해 오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미국 서부개척사의 '총잡이' 같았다. 수풀 속의 악당들은 이제 그들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98년 여름, 나는 한 전설적인 '지뢰잡이'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만났다. 젊어서는 직업군이, 전역후에는 '지뢰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68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전력이 밝혀지는 것을 몹시 꺼렸다. 그는 지뢰는 국방을 위해 매설한 국가의 재산이며 따라서 이를 캐어내는 것은 불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노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이웃 사람에게 물어 본다든가, 읍사무소에서 거주자 명단을 들춰 본다든가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키고 있다. 그런 신뢰 때문에 그는 나를 만나면 반가워 한다.
"지뢰를 100개쯤 캐 보았습니까?"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20개쯤?"
너무 숫자가 많은 것 같아 다시 물었다.
"군대생활 할 때까지 합하면 600~800개는 될 걸. 집중력을 요구하는 위험한 일이야."

그이 얘기를 듣는 동안 공장 굴뚝 쌓기나 고층건물 유리창 닦기 같은 아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지뢰를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잡이'는 고수익 직종이었다.
지뢰밭 1평을 낱낱이 뒤져 안전한 땅으로 확신시켜주는 댓가는 1~3만원. 1,000평이면 최고 3,000만원을 버는 셈이다. 당초부터 지뢰를 묻지 않은 땅이어서 단 1개의 지뢰도 찾아내지 않고도 수십, 수백 만 원을 챙기는 재수좋은 날도 있었다.
"그때 한 밑천 톡톡히 잡았나요?"
"날이면 날마다 불려 다닌게 아니니까. 그리고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은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 일에서 손을 뗀 것도 꿈 속에서 백발노인이 현몽했기 때문인가요?"
그러나 노인이 '지뢰잡이'에서 손을 뗀 것은 의외의 이유 때문이었다.
남북관계가 호전돼 가면서 민통선 북방지역, 특히 끊긴 국도주변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5번국도 주변 '지뢰미확이지대' 땅 값은 평당3만원이나 호가했다. '지뢰잡이'의 용역비도 평당 3만원, 결국 지뢰밭을 평당6만원식 주고 사는 셈이다. 개간 비용까지 합하면 도무지 채산이 맞지 않았다. 정말 통일이 머지 않았다면 굳이 돈 들여 논을 풀 필요도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부동산 부자가 되고, 그 때 가서 되팔든지, 별장을 짓든지, 가든을 짓든지 하는 편이 현명하다. '지뢰잡이'는 결국 수요가 없어 시나브로 사라진 것이다. 민통선의 땅값 상승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계속 정비례할 것이다. 그리고 지뢰를 파낼 필요성도 더 없어질 것이다.

-----중략-----

결국 지뢰는 인간의 가슴 속에 우글거리는 오해, 증오, 저주, 분노,도발, 보복 따위를 자양분으로 배양돼 태어난 독충이다. 그리고 '지뢰백신' 그것은 그 독충이 무서워 쩔쩔매고 있는 자연. 지뢰독충들을 점령하는 동안 오해, 증오, 저주, 분노, 도발, 보복 따위에 면역력이 생긴 '민들레 벌판'에서 찾을 수 있는 물질이다. '지뢰백신'을 가슴 속에 접종받은 이는 절대 지뢰를 만들지 않을 것이며 그 백신을 세상에 퍼뜨리면 지구의 지뢰는 증가 속도가 매우 줄어들 것이다.

나는 정말 '지뢰백신'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참할 뜻이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요즘도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 앞머리는 소설가 이외수(李外秀)의 감성사전 '인간'의 항목을 그대로 베껴 쓰고있다. 그 글이 지구에 독충을 묻어두고, 급기야 그 앞에서 벌벌 떠는 인간의 치졸함을 족집게로 뽑아낸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이기주의적이로 지능이 발달한 영장류.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많은 전쟁무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번의 핵실험을 통해 대기권 안의 전 생명체들을 멸종의 지름길로 인도하고 각종 폐기물을 통해 대기권 전역의 생태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나 지구에 기생하는 어떤 생명체도 숙주인 지구를 파괴하는 법은 없으며 오직 인간들만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자연에게서 많은 것을 착취해 왔으나 자연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장 조화된 것은 가장 진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이며 안다고는 하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 자신들의 껍질에 가리워져 스스로의 참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본론을 쓰고 있다.
「지뢰(地雷)는 인간이 만든 그 많은 전쟁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DMZ는 인간이 만든 그 많은 전쟁무기들을 시험해 보던 지구상의 여라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인간이 만든 무기 가운데 너무 잔악해 인간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지뢰가 묻혀 있는 지구상 여러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뢰를 보고 두려워 떨고 있는 동안 자연은 그 곳을 두려움 없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 곳의 지뢰를 캐어내고,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그 나무를 '평화나무'라고 명명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렇게 지구 위의 지뢰밭을 평화나무밭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Posted by 함광복

2007/08/23 13:34 2007/08/2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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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반(反)지뢰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997년 11월 6일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가 발족됐다. 이미 한국 밖에서는 그 해9월1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전 세계 89개 참가국의 합의로 '대인지뢰금지협약'을 통과시켜 놓고 있었다. 그런 외풍에 힘입어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발족했지만 한국에선 아직 반지뢰 운동이 시기상조였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태클을 걸었다. 미국은 '대인지뢰의 생산과 사용을 즉각 중지해야 하고, 10년 이내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는 이 협약에서 한반도 DMZ의 지뢰는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한 특수한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대인지뢰대책회의(ICBL)나 '반(反)지뢰' NGO들이 인정할리 없었다.
"좋다. 그러면 우린 나가겠다."
미국은 한반도 DMZ가 예외지역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을 빌미로 대책회의에서도 탈퇴했다. 어차피 중국이나 러시아 등 지뢰강국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대책회의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밖의 상황은 더욱 좋지않게 변해갔다. '대인지뢰금지협약'은 1999년 3월 1일 43개국의 비준을 얻어 발효됐다. 그리고 2000년 9월 15일 제2차 국제대인지뢰금지조약 당사국 회의 때는 가입국이 139개국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지뢰 강국들 즉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한국, 파키스탄,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은 이 협약을 외면하고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139개 가입국이 보유하고 있는 지뢰는 고작 2,500만 개다. 그러나 9개 미가입국의 보유지뢰는 2억 2,500만 개에 달했다. 협약 발효 후 1,900만 개의 지뢰가 폐기됐다. 그러나 그런 반지뢰운동은 '지뢰 약소국들만의 잔치'였다.

-----중략-----

강원도 철원의 한 민통선 북방지역엔 마을 사람만 아는 '지뢰무덤'이 있다. '지뢰무덤'이란 개간지에서 파낸 지뢰를 한 곳에 모아 작은 돌무덤처럼 쌓아 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철원군 갈말읍에서 만난 40대 농민은 그 무덤을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대를 물려 만든 그 무덤은 고인돌이나 패총 같은 현대한 선사유적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건 절대 비밀이라며 나를 그 곳으로 안내해 주지 않았으며, 그 무덤의 위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면 농지를 개간할때 '저기 지뢰가 있다'고 공개하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었다. 개간지의 지뢰는 반드시 군부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개간지에서 발견된 지뢰는 군인들에게도 골치 아픈 존재다. 군인들은 일단 지뢰가 발견된 지역은 지뢰표지판을 세우고 다음 조치를 기다린다. 지뢰표지판이 세워진 지역은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농지개간은 거기서 끝이다. 따라서 농민들에게는 혹시 지뢰가 발견되더라도 신고하지 않는 쪽이 늘 유리했다. 그 '지뢰무덤'은 그렇게 생겼다는 것이다.

"위험할 텐데 지금이라도 그 '선사유적'을 발굴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그렇게 걱정하자 그는 민통선에서는 지뢰피해자가 되고 안되는것은 팔자소관이라고 말했다. DMZ군이들에게 '지뢰군번'이 있듯이 민통선 농민들에게도 '지뢰주민등록번호'가 있다는 것이다. 군번(軍番, service number)이란 군인 각자에게 부여되는 고유번호이다. 인식표(認識票, idintification tag)는 군인의 성명과 군번, 혈액형이 새겨져 있는 길이 5cm, 폭 3cm의 타원형의 얇은 알루미늄 판이다. 모든 군인은 인식표를 잠잘 때, 샤워를 할 때도 항상 목에 걸고 있도록 되어 있다. 인식표가 전사자나 부상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그 인식표에 새겨진 군번 가운데는 '지뢰군번'이 있다고 믿고 있다. DMZ수색조는 맨 앞에 선 분대장이 반드시 지뢰를 밟는 것은 아니다. 확률상 맨 앞 사람이 지뢰에 가장 위험하지만, 사고는 가운데서도 일어나고 맨 뒷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지뢰를 밟는 것은 군인이 될 때부터 군번과 함께 '운명의 장난'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출생신고 때 받아 사망신고 때 말소되는 한국인의 고유번호다. 민통선 사람들도 '지뢰주민등록번호'가 있다고 믿고 있다. 지뢰밭을 들어가는 사람이 다 지뢰를 밟는다는면 아마 드넓은 철원평야나 파주평야는 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많은 민통선 사람 가운데 지뢰를 밟는 몇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지뢰를 밟는 '팔자소관'도 부여 받았다는 것다.

민통선 사람들은 지뢰패해자를 그렇게 '지뢰주민등록번호'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이라고 분류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이 지뢰사고로 사망하거나 다리를 잃은 세대는 노동력을 상실해 더 이상 농지를 확장할 수 없었으며, 이웃과 품앗이도 할 수 없게 됐다. 지뢰패해자들은 가난을 대물림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만손씨 같은 사람은 정말 팔자가 기구한 노인이다. 민통선 사람들은 대개 맨몸으로 민통선 북방지역에 입주했다. 지뢰가 그들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갈라놓은 것이다.

Posted by 함광복

2007/08/22 11:31 2007/08/22 11:31

1999년 7월 국회의원 회관에서는 '희생자를 기다리는 대인지뢰' 라는 약간 감상적 주제의 토론회가 '함께 가는 사람들'이란 단체 주관으로 열렸다. 주제 발표자 4명, 진행자 1명, 안내 2명, 객석 5~6명이 참석자의 전부인 쓸쓸한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서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지뢰피해자가 3,000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단 말이야?"
모두 주제 발표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 집계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중략-----

이 같은 지뢰피해는 모두 민통선 속의 '민들레 벌판'에서 일어났다. 이제 '민들레 벌판'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아무 탈도 없을 것이다. 그 곳이 정말 노란 민들레가 피는 밭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촘촘히 말뚝을 박고 가시철망 울타리를 친 다음 경고판을 써 붙이가만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뢰 무덤이나 되라며 내팽개친다면 지뢰 사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사실 어는 생명체도 지뢰처럼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무서운 번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뢰는 덩치가 큰 대전차용이 세상에 먼저 태어났다. 세계1차 대전 말기 탱크잡이 무기로 아주 각광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기껏 묻어두면 적군이 파내다 아군 탱크 길목에 묻어 놓는 경우가 잦았다. 대전차 지뢰를 훔치러 오는 적군을 격퇴하기 위한 작은 지뢰가 필요해졌다. 대인지뢰는 그런 필요에 의해 세상에 태어났다. 지뢰는 화약이 발명되면서 15세기 명나라 때 처음 실전에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이 미개한 생명체는 5세기 초에 완벽하게 진화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 그 세기가 가기전에 지구 전역에 종족을 번식시켰다. 랜드마인 모니터(Landmine Moniter) 1999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 매설돼 있는 지뢰는 87개국에 1억 1,000만개. 분쟁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중략-----

지뢰는 한 번 입력된 명령을 죽어도 지키고야 마는 고집불통의 생명체인 것이 틀림없다. 그 생명체는 '자신의 머리를 밟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심지어는 자신을 땅에 묻어 새 삶을 준 당사자라 하더라도 무차별 다리를 공격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죽지 못 한다'는 오기와 단기의 생명인자가 입력돼 있는 것 같다. 놈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매년 2만 6,000명이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 매달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2,000명 이상이 다리를 잃고 있다. 20분에 한 명꼴로 세계 어디선가 지뢰를 밟아 사망자나 장애인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냉혹한 무기였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리지 않았다. 피해자의 80%가 민간인에게 발생했다. 그리고 어린이 희생자가 이중 20%나 됐다.

1999년 8월 미얀마 국경 마에솟 지방에서 목재 운반용 태국 코끼리 '모탈라'가 지뢰를 밟은 사건이 일어났다. 몸무게 3t, 33살의 모탈라는 잠시 쉬는 동안 먹이를 찾아 정글을 서성이다 지뢰를 밟아 왼쪽 앞발을 잃었다. 아시아 코끼리 애호재단이 그에게 의족을 달아 준 미담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 사건은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이 지뢰에 희생되고 있는지를 새삼 되새기고 있다. 한 야생동물보호단체는 지구상에서 162만 7,000마리의 코끼리, 호랑이, 레오파드, 사슴 등이 지뢰에 희생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DMZ에서 야생동물이 지뢰에 희생된 사례가 밝혀진 일은 없었다. 그러나 많은 군인들은 DMZ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은 고라니나 노루 또는 멧돼지가 지뢰를 밟아 일어나는 것이라 믿고 있다.

----- 중략-----

'사람이면 더 좋다. 그러나 동물이라도 좋다. 내 머리를 밟아만 다오'
그것들이 '절대 죽어도 죽지 않겠다'는 오기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백춘옥씨(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리)는 20년 전 7살싸리 아들을 지뢰로 잃었는데도 자신까지 지뢰를 밟은 한 많은 여인이다. 1998년 8월, 그녀는 마을 앞 개울을 건너려고 물 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지뢰가 터져 발목이 절단됐다. 그 곳은 그녀가 개울 건너 밭으로 갈 때 늘 건너던 곳이며 채소를 씻거나 빨래를 하던 곳이다. 이웃 사람들은 "지뢰가 걸어 와 그곳에 숨어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며 그녀를 위로했다. 정말 지뢰는 걸어 다니기까지 하는 생명체였다. 지뢰는 이동할 줄도 알았다. 1998년 강화도 남쪽 세어도에서 2000년엔 석모도에서 세사람이 지뢰를 밟았아. 두 섬엔 매설지뢰가 없었다. 지뢰들이 홍수가 난 강을 따라 DMZ를 벗어나 수백 리 여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은 1996년부터 2001년 6월까지 강물을 타고 이동한 지뢰, 1,407개를 찾아냈다. 임진강에서 181개, 한탄강 232개, 차탄천420개, 대교천 142개, 김화 남대천 283개, 그리고 북한강에서 149개를 찾아냈다. 그 강들은 모두 DMZ를 관통하거나 지뢰 미확인지대를 횡단해 한강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세어도와 석모도는 한강 하구 남쪽 서해에 떠 있는 섬들이다. 100g짜리 폭풍지뢰들은 강물에 실려 서해까지 그리고 파도에 실려 외딴섬까지 여행한 것이다.

민들레는 엉거시과의 다년초. 뿌리와 줄기의 생명인자에 붕아력이 있어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 플라스틱이나 쇳덩어리 같은 썩지 않는 물질로 빚어진 지뢰도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 생명체다. '장군의 민들레'는 지금 그 독충들로 변신해 무서운 번식력으로 DMZ를 따라 반도를 횡단해 버렸다. '남쪽 민들레', '북쪽 민들레'가 다투어 심겨지고 있는 DMZ는 사실 세계 최고의 지뢰밀집 지역이 됐는지 모른다. 장군이라면 아마 "이 때문에 전쟁이 억제되고 있으며 그만큼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이들 독충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이지에 대해선 아무도 할 말이 없다. 돌 틈, 나무뿌리 사이, 갈대밭 속, 가랑잎 밑, 진달래 꽃 그늘, 찔레꽃 넝쿨 속, 곰취밭, 큰길가, 오솔길, 실개천, 모래밭, 두더지 굴 옆, 심지어 옹달샘 가재 집에까지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은신해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그 독충을 박멸할 대책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Posted by 함광복

2007/08/09 14:24 2007/08/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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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내게 산맥을 넘어가 보라고 했다. DMZ속으로 연어 떼가 치닫는 시퍼런 남강(南江)이 흐르고, 강가 무시무시하게 깊은 서어나무 숲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리며, 고미성(古美城)이라고 하는 작은 성터도 있다는 것이다. 1984년 여름이었다.

- 함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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