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는 최초 전쟁에서 기막히게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자신들이 어수룩해 보이게 하는 기만전술을 쓴 셈이다. 바로 지뢰는 머리를 밟고있는 동안은 절대로 터지지 않고, 발을 떼는 순간 터진다는 그 엉터리 정보가 그것이다. 그 무렵 나온 전쟁영화들까지도 그 엉터리 정보에 현혹돼 어처구니 없는 지뢰 상식을 퍼뜨렸다. 예를 들면 지뢰밭에서 꽃 피운 전우애를 그리면서 지뢰는 발로 머리를 밟고 있는 동안 절대 터지지 않는 멍청한 무기로 묘사하는 것 따위다.
수색조의 꼴통인 일등병은 이번 작전에서도 말썽을 부렸다. 수풀을 헤치고 가던 그이 몸이 갑자기 말뚝처럽 굳어 버렸다. 분대장을 행해 고개를 돌린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솟고 있었다. 분대장은 직감적으로 그가 지뢰를 밟고 있다고 알아차렸다.
"움직이지 마라!"
대검을 빼어 든 분대장은 어느 새 일등병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등병의 워커 밑에 깔린 대인지뢰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누르고 대검으로 지뢰를 캐내 능숙한 솜씨로 뇌관을 분리해 버린다.
민통선 개척민도 지뢰는 발을 뗄 때 터지는 굼뜬 무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뢰를 밟으면 영화속의 용감한 분대장과 같은 군인이 달려 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서 있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퍼트리기도 했다. 땅 속에서는 쇠붙이가 빨리 녹슬기 때문에 전쟁 때 묻은 지뢰들은 삭아 없어졌거나 터질 힘도 없다는 무식한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지뢰에 대해 떠돌고 있는 정보는 모두 엉터리였다. 많은 개척민들이 자신이 지뢰를 밟았을 때 였는지, 발을 떼었을 때였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무참히 당하고 또 당했다. 지뢰에 녹이 슬었는지, 아닌지 분간할 새도 없었다. 지뢰는 항상 숨죽이고 숨어 있었으며 심지어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살아남아 개척민이 걸어오길 기다렸다.
"지뢰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체중이 실리는 순간 터져 버리는 대단히 재빠른 무기인데도 누가 무엇 때문에 발을 뗄 때 터지는 굼뜬 무기라는 소문을 냈을까. 누가 무엇 때문에 세월이 가면 지뢰도 작은 쇠붙이에 불과하다는 소문을 냈을까."
개척민들이 그런 후회를 하고 있을 때는 이미 민통선에서 벌어진 인간과 지뢰와의 첫 싸움에서 인간의 참패가 결정됐을 때다.
그러나 인간과 지뢰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민통선 마을에 '지뢰잡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대개 왕년에 지뢰를 매설해 보기도 하고, 제거해 보기도 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스스로 지뢰에 관한 한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지뢰들을 찾아냈다. 그들이 한 바퀴 돌아 나온 숲에서는 지뢰사고가 나지 않았다. 개척민들은 그들을 고용했다. 어느 마을에 기막힌 솜씨를 가진 '지뢰잡이'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를 초빙해 오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미국 서부개척사의 '총잡이' 같았다. 수풀 속의 악당들은 이제 그들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98년 여름, 나는 한 전설적인 '지뢰잡이'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만났다. 젊어서는 직업군이, 전역후에는 '지뢰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68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전력이 밝혀지는 것을 몹시 꺼렸다. 그는 지뢰는 국방을 위해 매설한 국가의 재산이며 따라서 이를 캐어내는 것은 불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노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이웃 사람에게 물어 본다든가, 읍사무소에서 거주자 명단을 들춰 본다든가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키고 있다. 그런 신뢰 때문에 그는 나를 만나면 반가워 한다.
"지뢰를 100개쯤 캐 보았습니까?"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20개쯤?"
너무 숫자가 많은 것 같아 다시 물었다.
"군대생활 할 때까지 합하면 600~800개는 될 걸. 집중력을 요구하는 위험한 일이야."
그이 얘기를 듣는 동안 공장 굴뚝 쌓기나 고층건물 유리창 닦기 같은 아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지뢰를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잡이'는 고수익 직종이었다.
지뢰밭 1평을 낱낱이 뒤져 안전한 땅으로 확신시켜주는 댓가는 1~3만원. 1,000평이면 최고 3,000만원을 버는 셈이다. 당초부터 지뢰를 묻지 않은 땅이어서 단 1개의 지뢰도 찾아내지 않고도 수십, 수백 만 원을 챙기는 재수좋은 날도 있었다.
"그때 한 밑천 톡톡히 잡았나요?"
"날이면 날마다 불려 다닌게 아니니까. 그리고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은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 일에서 손을 뗀 것도 꿈 속에서 백발노인이 현몽했기 때문인가요?"
그러나 노인이 '지뢰잡이'에서 손을 뗀 것은 의외의 이유 때문이었다.
남북관계가 호전돼 가면서 민통선 북방지역, 특히 끊긴 국도주변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5번국도 주변 '지뢰미확이지대' 땅 값은 평당3만원이나 호가했다. '지뢰잡이'의 용역비도 평당 3만원, 결국 지뢰밭을 평당6만원식 주고 사는 셈이다. 개간 비용까지 합하면 도무지 채산이 맞지 않았다. 정말 통일이 머지 않았다면 굳이 돈 들여 논을 풀 필요도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부동산 부자가 되고, 그 때 가서 되팔든지, 별장을 짓든지, 가든을 짓든지 하는 편이 현명하다. '지뢰잡이'는 결국 수요가 없어 시나브로 사라진 것이다. 민통선의 땅값 상승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계속 정비례할 것이다. 그리고 지뢰를 파낼 필요성도 더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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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뢰는 인간의 가슴 속에 우글거리는 오해, 증오, 저주, 분노,도발, 보복 따위를 자양분으로 배양돼 태어난 독충이다. 그리고 '지뢰백신' 그것은 그 독충이 무서워 쩔쩔매고 있는 자연. 지뢰독충들을 점령하는 동안 오해, 증오, 저주, 분노, 도발, 보복 따위에 면역력이 생긴 '민들레 벌판'에서 찾을 수 있는 물질이다. '지뢰백신'을 가슴 속에 접종받은 이는 절대 지뢰를 만들지 않을 것이며 그 백신을 세상에 퍼뜨리면 지구의 지뢰는 증가 속도가 매우 줄어들 것이다.
나는 정말 '지뢰백신'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참할 뜻이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요즘도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 앞머리는 소설가 이외수(李外秀)의 감성사전 '인간'의 항목을 그대로 베껴 쓰고있다. 그 글이 지구에 독충을 묻어두고, 급기야 그 앞에서 벌벌 떠는 인간의 치졸함을 족집게로 뽑아낸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이기주의적이로 지능이 발달한 영장류.
지구에 기생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많은 전쟁무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번의 핵실험을 통해 대기권 안의 전 생명체들을 멸종의 지름길로 인도하고 각종 폐기물을 통해 대기권 전역의 생태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나 지구에 기생하는 어떤 생명체도 숙주인 지구를 파괴하는 법은 없으며 오직 인간들만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자연에게서 많은 것을 착취해 왔으나 자연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장 조화된 것은 가장 진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이며 안다고는 하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 자신들의 껍질에 가리워져 스스로의 참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본론을 쓰고 있다.
「지뢰(地雷)는 인간이 만든 그 많은 전쟁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DMZ는 인간이 만든 그 많은 전쟁무기들을 시험해 보던 지구상의 여라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인간이 만든 무기 가운데 너무 잔악해 인간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지뢰가 묻혀 있는 지구상 여러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뢰를 보고 두려워 떨고 있는 동안 자연은 그 곳을 두려움 없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 곳의 지뢰를 캐어내고,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그 나무를 '평화나무'라고 명명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렇게 지구 위의 지뢰밭을 평화나무밭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Posted by 함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