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음부터 철원에서 왕이 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철원으로 가기 위해 엉뚱하게 반대 방향인 명주(溟州:강릉)로 갔다. 북쪽으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갔다. 그의 행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는 북원(北元:원주)을 떠날 때 이미 용의주도하게 대장정의 루트를 그리고 있었던 것같다. 그는 훗날 자신이 통치할 땅덩어리의 크기를 발로 밟아 재고 있었으며 자신이 다스릴 백성들을 말 등에 않아 불러모으고 있었다.

지름길을 두고도 먼길을 돌아가는 전략. 영웅들은 종종 이런 전략을 즐겼다. 현대사에서는 모택동의 대장정이 그 우회전략의 백미다. 1949년 10월 1일. 모(毛)는 베이찡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했다.
모는 그 자리와 그 순간을 위해서 15년 전인 1934년 홍군을 이끌고 중국 남부 루이진(金)을 떠나 위뚜(于都)의 작은 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가을 달빛이 길을 밝히던 10월 16일이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의 주름살 같은 중국 남서부 대산맥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엉뚱하게 2만km 떨어진 대륙 북쪽 싼시성(陝西省) 위지(昊旗)에 나타났다. 위뚜강을 도하한지 1년 만인 1935년 10월 19일. 그는 북쪽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갔으며 중국 대륙을 장악하기 위해 되각했다. 그 사건은 아직도 '20세기의 사건 중 그처럼 강력하게 세계의 상상력을 사로 잡은 사건은 없었으며 그토록 인류의 미래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건도 없었다' 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태어난 에너지원이 바로 그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기 896년 궁예는 철원에서 자신을 왕이라고 선언하면서 국가를 선포했다. 궁예는 그때를 위해 4년 전 북원(원주)를 떠났다. 홍군이 위뚜강을 건너던 때처럼 그때도 10월. 가을이었다. 그는 양길(梁吉)로부터 얻은 6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양길은 신라정부의 과도한 세금독촉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있을 때, 북원(北原:원주)에서 봉기해 큰 세력을 이끌고 있었으며 궁예가 양길의 명을 받고 동쪽으로 떠날때, 이미 그는 북원과 국원(國原:충주)을 근거지로 한강 중류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궁예가 더 깊은 내륙, 한강 상류를 빼앗아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궁예는 태백산맥을 넘어 한반도의 동쪽 끝으로 가 사라져 버렸다. 3년후. 궁예는 엉뚱하게 북원의 북쪽, 반도의 서쪽인 철원에 나타났다. 궁예의 그 대장정 사건은 경주의 신라 왕조, 전주의 견훤, 철원이 궁예로 3각 세력구도가 형성되는 후삼국 시대, 9세기 말 한국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개막시켰다. 그 후 궁예를 군사 쿠데타로 축출한 왕건이 고려를 세워 한반도를 평정했지만, 그 기틀은 이미 궁예시대에 만들어졌다. 사실 왕건의 고려는 궁예의 '빼앗긴 나라'의 재건이다. 따지고 보면 고려의 한반도 통일의 에너지원은 바로 궁예의 대장정, 그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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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주를 떠나 철원까지 간 '궁예의 길'은 여전히 미궁이다. 중국 남서부 대산맥 속으로 사라진 홍군이 그때 아무도 모르게 대설산을 넘고 있었던 것처럼 한반도 동쪽 바닷가에서 사라진 궁예도 아무도 모르게 한반도의 등뼈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군사작전은 불가능하다. 철원은 명주의 서북방,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횡단해야 만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대각선 루트는 이미 궁예가 배신한 양길의 강력한 군사력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곳곳에 역시 적(敵)인 신라의 군사력이 미치고 있었다. 그는 대각선 루트를 택하지 않은게 틀림없다.

-----중략-----

궁예의 그길은 지금 따라가 볼 수 없다. 금강산과 향로봉산맥 사이 삼재령으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은 지금 DMZ가 고스란히 깔고 앉아 있으며 그사이로 무심히 남강이 흘러 해금강 앞에서 바다를 만나고 있다. 외포, 내포, 고미성, 사천, 사비리 등 강마을은 반세기 동안 비어 있는 마을이다. 서희구도 DMZ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서희령에서 발원해 서희구에서 소양강을 만나는 성내천은 DMZ에 묻혀 있는 하천이다. DMZ는 다시 서희령을 넘서 사태리 계곡으로 쳐 박혔다가 단장의 능선을 타넘어 문등리 계곡으로 들어가고 있다. 화천에서 금성으로 가는 옛 금강산 가던 길은 주파령 너머에서 끊겨있다. 금성천변의 등대, 세현리도 지금 사람이 살지 않는 DMZ마을이다. 금성은 지금 북한 땅. 금성에서 김화로 가자면 남대천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건너다니던 그 곳은 지금 DMZ가 건너가고 있다. 김화에서 철원 풍천원에 이르는 작은 벌판과 골짜기와 한탄강가는 금강산 전기철도가 달려가던 곳이다. 그러나 그 곳도 지금 DMZ가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DMZ한가운데 풍천원에 궁예의 천년고도가 잠들어 있으며 공교롭게도 궁예의 길 위로 지금 DMZ가 지나가는 것이다. 궁예는 그의 서진로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그 길은 처음엔 궁예의 나라 국경이었지만 훗날 고려통일의 출발선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도 DMZ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처음엔 DMZ가 남북의 '국경'이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화해와 통일의 출발선으로 고쳐 생각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함광복

2007/10/08 20:41 2007/10/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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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내게 산맥을 넘어가 보라고 했다. DMZ속으로 연어 떼가 치닫는 시퍼런 남강(南江)이 흐르고, 강가 무시무시하게 깊은 서어나무 숲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리며, 고미성(古美城)이라고 하는 작은 성터도 있다는 것이다. 1984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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