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독수리가 떨어졌다.
1993년 12월 14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했다. 오후3시40분께 줄지어 서 있는 미루나무를 향해 커다란 검은 새 한마리가 아주 느리게 날아왔다. 한 군부대의 초병이 이 새를 감시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무척 큰 새였다. 큰 새도 이 지역을 처음 와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착륙방법이 서툴러 보였다. 가는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동안이었다. 큰 새는 나뭇가지에서 미끄럼을 타듯 밀려 내려가다가 땅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잠시 후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초병이 달려가 붙들려고 하자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투항애 버렸다. 큰 새는 몽골서 날아 온 독수리였다.

1994년 1월 강원 양구 방산 어느 농가에 추락해 생포. 마을 사람들 난생 처음 본 대형 날짐승과 기념사진 찍기로 결정
어느 겨울, 나는 어린이 탐조 여행단을 그 벌판에서 만났다. 인솔자는 어린이들에게 "새 떼가 DMZ 북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세 휘둥그래진 어린이들의 눈이 "왜요, 왜요?"하며 답변을 재촉했다. 나도 답변이 궁금했다. 정말 두루미가 DMZ 늪으로 잠을 자러 갈 뿐, 그 많은 철새 가운데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는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야 새들도 따뜻한 남쪽나라를 더 좋아하기 때문 아니겠니."
아이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시시하다는 듯 자기들끼리 주고받던 얘기를 다시 재잘거렸다.
서울의 겨울 평균 기온 영하 1.6도, 평양은 영하 4.2도이다. 분명히 서울 쪽이 따뜻한 남쪽나라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런 지리적 뜻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은 1987년 2월 8일 가족11명을 이끌고 북한을 떠나 서울로 온 김만철씨가 세상에 퍼뜨렸다. 김씨는 50t짜리 배를 몰고 북한 청진항을 탈출했으나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 일본 미쿠니항에 도착했다. 일본 나라시대의 역사서 니혼쇼키에는 고대인들이 10월~2월 사이 북서계절풍을 등에 업고 동해의 '리만한류'를 따라 일본으로 항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씨는 우연히 고대 뱃길에서 표류하고 있었고, 탈불 동기를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따뜻한 남쪽나라'에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Posted by 함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