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괴질은 등줄쥐에서 '출혈열 바이러스'가 발견됨으로써 그 숙제가 풀렸다. 이제 등줄쥐는 DMZ에서 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들지 않았다. 쥐는 인간만큼 약을 뿐 아니라 분명히 약자이면서 절대로 인간에게 지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인간보다야 약자이지. 그러나 인간, 당신들이 있는 곳엔 어디나 우리도 기생해 있어요. 당신들이 DMZ를 점령했다고? 그렇다면 우리도 점령한 셈이지. 하하하."
쥐가 그렇게 인간을 비웃을 것 같은 사건이 DMZ에서 일어났다.

-----중략-----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해 겨울, 나는 DMZ의 산양을 보기 위해 향로봉산맥으로 올라갔다.
산양일가는 정말 군인을 겁내지 않았다. '통배추 던지기'병사가 골짜기 속을 가리켰다. 짙은 밤색 바위들 사이에 통배추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밤색 바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산양이었다. 그들은 엄마, 아빠, 아이들의 일가가 아니었다. 온 동네 산양이 다 모인것 같았다. 20여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산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이를 포기한 채 우르르 산기슭을 향해 달아났다. 이단자가 침입한 것 같았다.

"그 이단자가 누구야? 민간인, 나일까?"
나는 병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야생 고양이가 나타났습니다."
병사가 맞은 편 언덕에 시선을 꽂은 채 말했다. 과연 고양이 몇 마리가 언덕 위에서 빤히 산양 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들보다 대여섯 배나 덩치가 큰 산양 떼를 공격할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냥 고지의 군인들이 먹을 식량을 축내고 있는 야생동물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산양들은 겁을 먹고 달아나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DMZ는 그들이 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추위나 더위에 유별나게 민감한 그들이 의지할만한 폐가나 빈 창고, 문 닫은 공장 그리고 통조림통이나 살 붙은 생선도막이 버려지는 쓰레기통이 있는 곳도 아니다. 더구나 DMZ는 그들이 살던 도시로부터 너무 먼 곳이다. 그들은 호기심은 많고 인내력은 없는 성격에다 짧은 다리를 가진 신체적 특성 때문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DMZ를 향해 묵묵히 여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DMZ에 고양이가 살고 있는 기이한 현상도 알고 보면 서로 내가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는 인간과 고양이의 특별한 관계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번에도 그 등줄쥐가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중략-----

정말 DMZ 군인들에게도 쥐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동물이다. 그들은 보급 창고를 털어 군인들의 양식을 축냈으며 어떤 때는 건빵50봉지가 든 박스를 상처 하나 안 내고 알맹이만 빼내는 신기를 발휘했다. 전화선을 갉아 유선통신을 마비시켰으며 전선을 잘라버려 전깃불을 끄거나 누전화재를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발진티푸스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쥐벼룩을 옮겨놓았다. 병사들이 쥐잡기를 하고 있지만 불필요한 노동력 소비였다.

3~4개월마다 한 번에 4~12마리씩 새끼를 낳는 그들의 출산력을 따라잡을 수 는 없었다. 누군가 고양이를 기르자고 제안했다. 그 후 쥐 사냥꾼 '고양이의 초빙'은 DMZ의 오랜 전통이 됐다. 그러나 그들이 병영생활에 적응할리가 없다. 그들은 DMZ에서도 특유의 '주거감각'을 발휘했다. 자신을 보살피던 병사가 전역하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고양이는 가거나 말거나 관심 없었다.
DMZ는 애완동물을 기를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다. 병사들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자 고양이는 진지를 떠나 버렸다.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DMZ동물들의 먹이사슬에서 이미 야생화된 집고양이보다 상위 동물은 없다. 그 옛날 DMZ가 생기기 전 향로봉산맥에는 호랑이, 표범 등의 무시무시한 동물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곳에 살지 않는다. 당연히 호랑이 없는 곳에서 고양이가 왕이 된 것이다.

나는 DMZ병사들로부터 "고양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다래를 따 먹는다."는 소릴 듣고 믿지 않았다. 그들이 DMZ 자연생태계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말이려니 했다. 그러나 고양이가 개다래(silver vine)생잎이나 줄기, 열매를 매우 좋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릎을 치며 웃었다. 개다래는 한국, 일본, 사할린, 쿠릴열도의 깊은 산 속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느 다래나무과의 낙엽성 덩굴식물이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개다래의 그것들을 먹으면 술에 취한 것처럼 황홀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잎이나 줄기, 열매에 대뇌나 연수(延髓)를 자극하여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DMZ의 고양이들은 가끔 개다래를 따 먹으면서 매우 기뻐할 것이다.

"DMZ야말고 나를 도둑고양이라고 모욕을 주면서 괴롭히는 인간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곳, 그리고 내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천국이다."

DMZ 등줄쥐는 그런 그들을 보고 무어라고 할까.

"이봐, 자네들은 우리의 5,000년 천적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우린 자네들을 어디든지 이주시킬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라네, 어때 달나라에 가 살 생각은 없으신가?"

Posted by 함광복

2007/07/05 20:25 2007/07/05 20:25

1993년 10월 7일 강원도 가축위생연구소는 한 달 전 미쳐 날뛰다 죽은 김모씨가 기르던 숫놈 발바리가 진성 광견병이었다고 병성(病性) 감정결과를 통보했다. 오지리는 몇 년 전 민간인통제선을 북쪽으로 더 밀어 올리면서 '민남(民南)지역'으로 편입된 마을이다.

'민남지역'이란 행정지명은 없다. 그러나 철원 사람들은 민간인통제선을 중심으로 그 북쪽의 철원을 '민북(民北)지역', 그 남쪽을 '민남지역'이라고 불렀다. 일단 민남지역으로 편입되면, 거주의 자유가 보장될 뿐 아니라 야간통금 따위도 없어져 주민들은 "우리도 비로소 보통 사람이 됐다."며 으스댈 수 있었다. 민통선 초소의 바리게이트가 치워진 오지 사거리는 작은 면 소재지처럼 번화해졌다. 수퍼마켓이 생겼고, 철원평야의 땅 부자들이 주고객인 다방과 술집, 민통선 어린이들이 "왜 우리 동네는 없느냐."고 성화이던 피아노 학원도 들어섰다.

-----중략-----
사용자 삽입 이미지

DMZ의 모든 젖먹이는 동물이 광견병에 걸릴 수 있다.


그 바이러스는 고온에는 약해 태양광선이나 자외선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으나 전파 보균체인 야생동물을 일일이 붙잡아 백신 접종할 수 없다는 방역의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먹이를 찾아', '번식을 위해' 국경 없이 이동하는 그들에게 예방주사를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 처음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후 매년 200~800건씩 발생하다가 차츰 줄어들어 1984년 단1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8년 동안 감족같이 사라졌었다. 이미 한국에서는 '미친개'란 말은 옛날 얘기 속에나 나오고 있었다.

잊여진 병, 광견병. 하필 그 병이 막 민통선으로부터 벗어난 오지리, 모든 오염원으로부터 차단된 청정지역이라고 믿고 있던 그 마을에 발생한 것이다. 주민들은 몹시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8월 18일 밤 김씨는 잠결에 발바리가 심하게 짖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저 놈이 옆집 암놈을 놓고 제 친구와 삼각관계인 것 같아."
김씨는 별 생각 없이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늘 아침 굉장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오소리 한마리가 나자빠져 있었다. 발바리도 상퍼를 입은것 같았으나 의기양양했다. 내 솜씨가 어떠냐는 듯 껑충껑충 뛰며 김씨를 반기고 있었다.

김씨는 오소리가 간밤에 그 산에서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 발바리에게 당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소리는 쐐기처럼 생긴 땅딸막한 몸매인데다 네 다리, 특히 앞 다리는 바위를 들어내는 강한 힘을 가진 동물이다. 밴텀급 체격의 전형적이 인파이터이다. 김씨의 개는 발이 짧아 발바리다. 그 발바리가 야생의 오소리를 잡아 눕혔다는 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발바리의 용맹은 삽시간에 이 마을, 저 마을에 알려졌다. 어떤 이는 씨를 받겠다고, 암놈 발바리를 이끌고 오기도 했다. 개가 그런 데 우쭐해져 감자기 버릇이 나빠질 리는 없다. 그런데도 발바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쁜 짓을 저질럿다. 느닷없이 제 나이와 같은 옆집 소년을 문 것이다. 이어서 놀러 온 두 마리의 친구 발바리를 물어 뜯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쏜살 같이 달아나 버렸다. 사람들은 그때 발바리의 광기 어린 파란 눈을 보았다. 오소리와 일전을 벌인 그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인 9월 18일 오후 5시께였다.
발바리는 이틀 후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수의사들은 발바리가 광견병에 검염돼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오소리와 싸웠고, 그때 자신도 래비즈 바이러스를 옮겨 받았으며 1개월 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다고 풀이했다.

-----중략-----

방역당국은 2001년 초봄 DMZ 인근지역에 광견병 미끼 백신을 살포했다. 미끼 백신이란 동물들이 좋아하는 미끼에 예방주사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백신 성분을 넣어서 비행기로 산악지방에 뿌리거나 야생동물이 많은 지역에 배포하는 방법이다. 강원도 가축위생시험소는 수의과학검역원과 함께 썩은 고기 냄새가 나는 성냥갑 크기의 미끼백신 1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봄눈이 녹기 전에 강원도 철원, 화천지역에 뿌렸다. 이는 DMZ 남쪽에 폭 10Km의 방역대(防疫帶)를 설치하기 위한 예비 시험으로 이미 풍토병이 되다시피 한 광견병의 남하를 막자는 것이다.

2001년 5월 미끼백신은 76%가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오소리일까? 아니면 너구리나 집을 나온 들고양이, 또는 등줄쥐? 누군가 이 '예방음식'을 주워 먹은 게 틀림없다. DMZ 야생동물들은 누구라도 먹어야 한다. 그리고 광견병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함광복

2007/07/04 14:29 2007/07/04 14:29

강원도 양구의 대암산 용늪도 전쟁 후유증의 희생자다. 대암산은 주봉에서 북서쪽으로 2km 거리에 해발 1,304m의 도 다른 봉우리를 가진 쌍두봉(雙頭峰)이다. 두 봉우리는 활처럼 휜 기다란 능선이 다리처럼 잇고 있다. 그 능선 동쪽 기슭은 해발 1,000~1,280m 의 넓은 평원이다. 형제 늪, 큰 용늪과 작은 용늪은 이 평원 속에 들아 앉아 있었다. 형제 늪은 1966년 2년 간 한국 자연보존연구소아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DMZ 공동 학술조사에서 밝혀져 세상에 알려 졌다. 당시 그들이 신문에 공개한 그 늪은 산정에 거대한 녹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했다. 4,500살쯤된 나이백이 늪이었지만 금방 그려낸 수채화처럼 파란 물감이 묻어날 듯이 싱싱한 느낌이었다. 늪 한가운데는 작은 연못도 하나 있었다. 그 연못물이 지독한 산성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이는 '저 연못엔 아침마다 산토끼가 찾아 와 물을 마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늪 속 연못, 산짐승들의 옹달샘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물벌레도 살지 않는 지독한 산성수다.




1986년 7월, 1년 후 대암산을 다시 올라갔을때, 나는 작은 용늪에 둑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드디어 군인들은 AN-2기의 착륙 장애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큰 용늪은 그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늪이 동쪽 산기슭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군인들은 용늪을 병들게 한 혐의를 그 웅덩이를 스케이트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학술조사단에게 두고 있다. 용늪이 고층습원으로 밝혀졌다고 해서 군인들이 흥미있어 하지는 않았다. 가장 열광한 집단도 학계나 환경단체였으며 그 늪을 가장 많이 다녀간 사람들도 그들이다. 첫 학술조사단이 다녀간 이래 그 늪은 '생체실험'을 아마도 100번도 더 받았을 것이다.


사실 DMZ 학술조사단은 향료(香料)를 찾아 동방항로를 떠나는중세선단 같았다. 귀항하는 배에는 무엇이든 지귀한 것이 실려 있어야 한다. 원주민에게 수탈을 해서라도 향료만 싣고 오면 그만이다. 용늪 학술조사단들도 탐욕스럽게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신종, 특산종 등 희귀 동식물 찾기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남보다 먼저 가 보물만 찾아오면 되는것 같았다. 이 때문에 DMZ 자연은 과거 여러 차례 실시된 조사들이 중복됐으며 상호 보완이 되지도 않았다. 조사내용은 연속성이 없었으며 자료로 축적 되지도 않아 활용도도 낮았다. 결국 조사보고서들은 전혀 새롭지 않은데도 자신에겐 새롭기 때문에 매우 새로운 것처럼 작성 됐다.


2000년 8월 나는 대암산에서 '고층습원의 치료사' 강교수를 만났다.
"몇 년 전보다 늪이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느낀 대로 내가 말을 건넸다.
"아직은 자연적으로 재생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요."
그는 예전에 내게 했던 그 말을 다시 했다. 그러면서 눈을 찡긋해 보였다.
"쉿, 조용히! 사실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사람만 안 오면 자연은 살아난다니까. 이걸 알면 또 사람들이 몰려 올 거요."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Posted by 함광복

2007/03/09 11:17 2007/03/09 11:17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dmzline.com/rss/response/5


블로그 이미지

어떤 이가 내게 산맥을 넘어가 보라고 했다. DMZ속으로 연어 떼가 치닫는 시퍼런 남강(南江)이 흐르고, 강가 무시무시하게 깊은 서어나무 숲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리며, 고미성(古美城)이라고 하는 작은 성터도 있다는 것이다. 1984년 여름이었다.

- 함광복

Archives

Authors

  1. 함광복

Calendar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69012
Today:
72
Yesterday: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