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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천적은 없다."
고라니 따위가 백수의 왕 노릇을 하며 속절없이 종족을 번식시켜 갈 것이다. 그러나 속단이다. 누군가 그들의 천적 노릇을 대행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그 곳은 야생동물에게조차 결코 평화스러운 곳이 아니다. 산불은 그들의 서식처를 불태워 버렸고, 가랑잎 속에 몸을 감춘 발목지뢰, 나뭇가지에 매달린 부비 트랩도 먹이를 찾아 나서는 그들을 기다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벌판을 말잔치장이나 야외 음악회장으로 만들고 있는 고출력의 확성기 소리에도 시달려야 한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철책선의 불빛, 고지의 부처님 오신날 연등, 까마득한 높이까지 점멸 꼬마전구가 매달린 크리스마스 트리도 신경 거슬리는 것들이다. 군막사와 벙커, 둔탁한 굉음을 내는 장갑차나 육중한 트럭, 어디서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무장한 군인 등은 너무 겁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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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적절히 적응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었을 것이다. 식물은 화공작전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초지로 변신했으며 그렇게 할 수 없는 큰 키 나무들은 불타 사라졌다. 야생동물들은 불빛과 소음, 군인이나 총소리를 진저리치며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그게 자신들을 위협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고라니 떼, 채소나 곡물, 농약과 비료와 트렉터 그리고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에 철책선을 어슬렁거리는 산양이나 멧돼지 떼, 그들은 길들여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게 적응에 성공한 야생동물만 지금 남북의 양쪽 능선에서 쏟아지는 확성기 말싸움을 '서울말', '평양말'로 구별해 내며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근거는 없지만.....
오로지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바람에 인간은 반세기 전, 그 곳에 가둬 둔 자연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인간이 '그곳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자연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말거나, 그곳의 자연은 제 살길을 찾아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DMZ, 그 곳엔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나라가 있었다.
Posted by 함광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