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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4 서문 by 함광복

서문

날아가는 기러기의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이 좀 바보같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게 말이죠, 이륙할 때의 보잉747 배하고 비슷해요."
이쯤 말하고 나면, 대개 폭소가 터지고 덤으로 "제발 좀 웃기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며칠 전 '작고 중'이라며 은근히 거절하는 소설가 이외수 집을 홍천강 수리재즤 다정(茶丁) 김규현과 함께 쳐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외수는 내게 그냥 '동네 선배'다. 그이는 그런 관계로 늘 내키든 안내키든 나를 받아주는 것 같고, 솔직히 난 그가 나 없는 어느 자리에서 "그의 신문 글엔 이상하게 문학적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는 소리를 들은 후 부터 부쩍 가속이 붙은 사이가 됐다.

다정이 3년 동안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돌아와서 "티베트에 있었지. 수미산(須彌山)을 찾았지. 내가 샹그릴라를 다녀왔단 말이야."하고 말했을 때. "오!오!"하고 감탄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이외수 뿐이다. 두 사람은 그런 사이다. 나는 다만 북경대에서 판화 공부를 한다고 엽서를 보낸 후 소식이 감감해진 다정에게 '내 친구는 어디에' 라며 신문에 글을 쓴 것 밖에 없다. 그 후 그가 나를 도반(道伴)이라고 부르지만, 그이도 이외수처럼 나이로 보나 아는 것으로 보나 나는 턱도 없다.

그날 셋이 앉았지만 찌그러진 삼각형 같은 관계였다. 더구나 나는 유불선을 넘나드는 그들의 선분답같은 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숨을 고르는 틈을 비집고 불쑥 내뱉은 말이 "날아가는 기러기 배를 보았느냐."였다. 두 사람이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뒤로 나자빠지는척 했다.
"뭐. 기러기 배?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
"마치 보잉747 배처럼 크고 미끈한게."
"와, 뻥 한번 죽인다. 뻥이지?"
"'노 뻥.' 데려가 보여 줄 수도 있어."
"어딘데. 거기가? 보여 줘."
여기까지는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깔깔대고 내게 손가락질을 해가며 말했다. 그러나 내 얘기를 듣는 동안 정색을 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철원평야엔 토교저수지라는 바다만한 호수가 있다. 평강고원 봉래저수지 물길이  DMZ로 끊기자 대타로 판 저수다. 그 호수가 DMZ와 맞닿아 있다는 이유로 거기 토교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물 반 고기반'이어서 토교저수지 물을 퍼다 끓이면 그대로 매운탕이 된다는 웃기는 소리만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토교저수지는 시베리아에 먼저 알려졌다. 두루미인지, 청둥오리인지는 알 수 없다. 우연히 들렸던 철새가 '철원평야에 가면 겨울을 날만한 기막힌 호수가 새로 생겼다'고 퍼뜨려 버린 것이다. 기러기만 날아 온 것이 아니다. 두루미는 더 많은 두루미를 데려왔으며, 텅둥오리는 더 많은 오리 떼를 몰고 와 오리과 철새 전시장이 돼버렸다.
몽골서 온 '청소용'독수리 떼까지 어디 날다 떨어진 철새가 없나 하고 어슬렁 거리고 있다.

사람들이 비밀이라며 감춰놓고 있는 동안 철새들이 날아와 '철새 나라'를 만들어 버렸다. 철원평야 추위가 겨우내 랭킹1위인 것은 평강고원에서 쏟아져 내리는 북서풍을 막을 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 추위에도 토교저수지는 얼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개를 꺄웃거릴 뿐 수천, 수만 마리 철새떼가 그 후수에서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다. 되게 추운 밤, 호수에서는 수십 마리 새 떼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물 속으로 쳐박혀 물결을 일으키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다이빙 쇼'가 호수 가장 자리에서 바자바작 얼어들어 오는 얼음과의 전쟁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렇게 밤을 지새웠어도 겨울 새벽6시는 비상할 시각이다. 이 시각 토교저수지 둑에 오르면 천둥소리보다 더 큰 새들의 함성에 숨이 넘어갈 듯 하다.
그때 하늘을 쳐다보면 머리 위로 타 넘어가는 새 떼의 배를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목을 내밀고 쑥 솟아오르는 기러기는 이륙하는 보잉747처럼 미끈한 허연 배를 다 드러낸다.

"거길 가면 '철새 보는 집'이라고 써 붙인 집이 있는데, 새벽 새 떼를 보려고 벽을 터 전망대처럼 유리창을 달고 살아."
"그 집 안방에 벌렁 누워서도 기러기 배를 볼 수 있어?"
두 사람은 소년이 돼 있었다.
"눕든 앉든 그건 자유야. 하여튼 그 집으로 형들을 데리고 갈 수 있어. 그이는 오랜 DMZ친구니까."
기실 내겐 '철새 보는 짐'주인, 양지리 구이장만 DMZ친구인 것은 아니다. 해안분지에 갈 때마다 만나는 한 젊은 공무원은 내가 민통선개척민으 집에서 백일 떡을 얻어먹었던 그 아이다. DMZ 한 장교를 그가 별을 달고 있는 모습으로 다시 만난 적도 있다. 끊어진 금강산 전기철도 옆에 휴게소를 짓고 속절없이 열차를 기다리는 부부, 외딴 개척민촌에 술을 빚게 하고 병사들에게 돈을 들려 내보내 이마을을 구제하던 슬기로운 연대장을 잊지 못하는 할머니, 전선으로 올라가는 병사들에게 40년째 수타 자장면을 먹이는 중국집 주인, 고구마를 캐다 대전차지뢰를 캐어놓고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던 아저씨, 눈 빨간 열목어를 '김일성 고기'라고 하던 소년, 쑥도 아닌것이 쑥같이 생겨서 두드러기만 일으키는 귀화식물 돼지풀을 '두드러기 쑥'이라고 즉시 작명을 해놓던 병사,.... 모두 오랜 DMZ친구들이다.

그날 나는 두 사람으로부터 '당신의 그 DMZ 친구들을 꼭 한번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를 따라 나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들이 나를 따라 DMZ여행을 더난다면, 그리고 두 사람의 감성과 상상력을 합해 한 이는 글을 쓰고, 한 이는 그림을 그린다면 옹고집 노인으로 늙어버린 DMZ, 20세가가 내팽개치고 간 그 냉전유적은 비로소 솔직한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두 사람이 떠난다면, 아니 다른 누구이더라도 그 여행을 떠난다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일들을 이 책에 담았다. 처음엔 나도 산 너머 멀리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우거진 숲을 찾아 DMZ로 떠났었다. 그러나 우리가 동경하든 자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인간의 지리한 싸움에 지치다 못해 적응하길 택한 듯 '전혀 뜻밖의 자연'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저주하고 증오하는 그 곳에서도 노인이 죽고,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 얘기들을 썻다.

Posted by 함광복

2007/07/04 15:36 2007/07/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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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내게 산맥을 넘어가 보라고 했다. DMZ속으로 연어 떼가 치닫는 시퍼런 남강(南江)이 흐르고, 강가 무시무시하게 깊은 서어나무 숲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리며, 고미성(古美城)이라고 하는 작은 성터도 있다는 것이다. 1984년 여름이었다.

- 함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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