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도성

궁예도성(弓裔都城)은 어디 있나? 사람들은 북쪽을 가리킨다. 철원의 북쪽은 DMZ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DMZ에도 그 성은 보이지 않는다. 북쪽을 향해 끝없이 벌판만 이어지고 있다. 아카시아나무와 갈대 숲, 가끔 고라니 한두 마리가 뛰어 노는 그런 숲이 평강고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철원의 북쪽 끝 '철의 삼각지 전망대' 북으로 난 커다란 유리창 너머론 늘 거친 벌판만 보인다. 거기도 궁예도성은 없다. 이 때문에 궁예도성은 DMZ에서도 언제나 '저 북쪽에 있는 성'이다.

최남단 섬 마라도에서도 더 남쪽인 동중국해에 있는 수중섬, 이어도(離於島). 옛날부터 제주도에서는 이 섬을 '환상의 섬'. '전설의 섬'이라고 불러왔다. 뱃사람들에게는 구전되어 온 '피안(彼岸)의 섬'이다. 이어도 처럼 궁예도성은 '상상의 성(城)'이다. 그 성은 갈 수 없는 성이다.

그 성을 가 본 단 한 사람을 나는 오래된 잡지 '開闢' 속에서 만났다. 3.1운동 후 발행되던 그 '저항 잡지'의 필자들은 자주 일본관헌에 붙들려가 매를 맞았다. 이 책의 제7호, 1921년 신년호 70쪽에 실린 '궁예왕의 옛 서울을 밟고'란 기행문의 작자도 그게 두려웠던지 '小春'이란 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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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춘(小春)이 '궁예왕 고탑(古塔)'이라고 하던 그 석탑(石塔)은 '높이가 어른 키로 세 길'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일본이 국보 118호로 지정했던 '석등(石燈)'이었던 것 같다. '조선고적도보'의 석등도 소춘이 땅 속에 묻혀 있었다는 기단을 빼면 그의 글에서처럼 6층이다. 그가 그 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희끔하게 보이는 듯하다'고 했던 그 월정역에는 지금 DMZ 남방 한계선이 흘러간다. 그 자리에 1988년 '철의 삼각전적지 개발 사업'으로 19.4평짜리 월정역이 옛 모습대로 복원됐다. 단선 궤도 120m를 깔고 그 옆에는 DMZ 안에 있던 열차잔해를 옮겨다 놓았다. '월정리 정차장을 지나 경원선로를 남으로 두고 월정촌(月井村)을 향하였다. 이때 노인은 월정리 입구에 보이는 좀먹은 낮은 돌담(石垣)을 가리키며, 이것이 궁예왕 때의 외성이라고 말했다.'라는 소춘의 글대로라면 도성의 남쪽 외성은 이 역 북쪽의 가까운 어느 지점을 지나가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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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궁터. 궁예도성과 DMZ의 기하학적 만남은 정말 우연이다. 도성과 DMZ는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사이에는 무려 1,000년 시공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절묘한 그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궁예가 세우려던 '대동방국'(大東邦國)의 이상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사학자들이 줄줄이 궁예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한 대목과 대목을 잇고, 그동안 얻어 모으고 들은 자료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면서 나는 '궁예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왕은 정말 DMZ안 그의 도성에 살아 있었다. 이런 게 그 증거다.

첫째. 궁예가 세운 도성의 절묘한 위치다. 그의 도읍 자리 풍천원(楓川原)은 옛 철원군 북면 홍원, 월정, 중강리 벌판을 가리키는 곳이다. 지금 그 벌판은 고스란히 DMZ 속에 묻혀 있다. 도성은 이 벌판 위에 내성과 외성으로 축성됐다. 최근 이 도성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에 공정하게 분배됐으며 궁궐터 고궐리 한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자나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왕은 풍천원에 새 도읍지 철원성을 짓고 나라 이름을 마진(摩震)으로 고쳤다. 마진은 대동방국이란 의미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아우르는 통일된 큰 나라의 꿈을 나라 이름에 담고 있었다. 다시 그는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바꿨다. 그는 '평화로운 통일천하'를 꿈꾸고 있었다. 풍천원 궁예도성은 그의 이상을 담아 두었던 곳이다. DMZ 속의 궁예도성은 지금 천 년 세월의 풍화에 씻겨 사라졌다. 그러나 그 성에 담겨있던 궁예의 이상은 여전히 유효해 지금 한국의 이상과 일치하고 있다.

둘째. '궁예의 길'이 휴전선과 너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북원(원주)의 양길(梁吉)을 떠나 한반도의 동쪽 끝 명주(강릉)로 갔던 왕이 다시 서쪽 끝 송악(개성)으로 간 대장정로를 정확히 밝힌 기록은 없다. 그러나 왕이 금강산 고성까지 갔었다면 그의 서쪽 행로는 아주 간단하게 추정될 수 있다. 향로봉 북쪽 기슭에 기대어 있는 삼재령을 넘었을 것이다. 해발 450m남짓한 삼재령은 한반도 등뼈를 동서로 넘나드는 고개를 통틀어 가장 낮은 고개다. 궁예는 삼재령을 넘어 인제 땅을 밟았을 것이다. 삼재령을 넘으면 해안분지 북쪽으로 양구 땅으로 넘어가는 서희령이 기다리고 있다. 서희령을 넘으면 양구 서천, 이 강은 곧장 화천으로 흘러간다. 화천에서 금성, 다시 김화를 지나 철원, 이어 송악.... 왕을 그렇게 반도를 서쪽으로 횡단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영토를 그렇게 구획했지만 그 곳을 국경으로 삼지 않았다. 그의 '서로(西路)'를 중심으로 북으로 대동강 이북까지, 남으로 금강이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왕은 북쪽의 걸안에 보검을 하사하며 자신의 야망을 암시했다. 그리고 그의 수군은 반도 남단 진도를 점령했다. 왕의 이상은 북으로 고구려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며, 남으로 중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해상권의 장악이었을 것이다. 고성-삼재령-서희령-서천-화천-금성-김화-철원-개성을 잇는 '왕의 서로(西路)'위로는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 선의 의미는 1,000년 전 왕의 이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결코 DMZ는 국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사에서 궁예의 시대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전환기이다. 궁예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의 내란기를 이끈 사람이고 신라를 해체하여 고려를 성립시킨 주역이다. 궁예의 나라 태봉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은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완충기다. 그것은 독립과 분단에서 통일시대로 넘어가는 완충기로 상징되는 DMZ의 역사적 상황과 역시 흡사하다.

넷째. 궁예의 나라 태봉이 갖는 시대적 상징성은 신라와 반신라가 충돌하던 두 이데올로기의 전선이다. 그것은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고있는 DMZ의 시대적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머지않아 남북은 통일을 할 것이다. 그것은 동서 냉전체제가 마지막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인류가 바라마지 않던 이상세계의 실현인 것이다. 궁예가 꿈꾸던 이상 세계인 셈이다.

나는 요즘 궁예도성에 오르면 숨이 막힐 것 같다.

Posted by 함광복

2007/09/11 17:49 2007/09/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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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내게 산맥을 넘어가 보라고 했다. DMZ속으로 연어 떼가 치닫는 시퍼런 남강(南江)이 흐르고, 강가 무시무시하게 깊은 서어나무 숲엔 장수하늘소가 우글거리며, 고미성(古美城)이라고 하는 작은 성터도 있다는 것이다. 1984년 여름이었다.

- 함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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